<국가가 나를 버렸다>

🦘: 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과거 권위주의 군사정권 시절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목적으로 불법감금과 강제노역을 일삼은 이른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이 각종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며 큰 충격을 주었죠. 최근에는 당시 전국에 있던 다른 수용시설에서도 유사한 행태가 있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더불어 누구보다 더욱 보호받아야 할 아동 보호 제도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오늘의 키워드는 ‘제2의 형제복지원’과 ‘아동 즉각분리’ 입니다.

🗾 전국 곳곳에서도 형제복지원이

이번 ‘국내 집단시설 인권 침해 실태조사’는 2020년 과거사법이 개정된 후, 제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가 1호 사건으로 본격 조사에 착수하며 진행되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연구 용역을 의뢰한 이번 조사는 광복 이후부터 1993년까지 서울·경기·인천·강원의 수용시설 11곳(서울시립아동보호소·성혜원·춘천시립갱생원·강릉시립갱생원 등)을 대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조사 결과 공공, 민간 위탁 가릴 것 없이 모든 수용시설에서 입소와 퇴소 전 단계에 걸쳐 인권 침해가 발생했다고 하는데요. 당시 수용시설 피해자의 인터뷰에 따르면 일상적인 폭력행위와 강제노역은 물론 아동 성폭행까지 이루어지는 ‘악몽’과 같은 곳이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입소자들의 사망률 역시 같은 해 성인 사망률에 비해 20~30배 높게 나타났다고 하죠.

⛔ 국민 보호가 아닌, 국민 통제로

더욱 충격적인 점은 일부 시설 입소자들의 연고자 비율은 70% 이상이었다는 것입니다. 술에 취한 직장인, 남루한 옷차림의 노동자, 심지어 길에서 오빠를 기다리던 어린아이 등 모두 가족이 있는 시민들이었죠. 갈 곳 없는 고아와 장애인, 노숙인 등 거리의 부랑인을 보호하기 위해 운영되었다던 시설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요? 바로 강제수용 정책을 추진한 주체가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였기 때문이죠.

😰 누구나 ‘부랑인’이 될 수 있었다

1975년 박정희 정권의 내무부 훈령 410호는 ‘부랑인’에 대해 이렇게 정의 내리고 있습니다.

해당 훈령은 부랑인에 대한 범위를 매우 넓게 상정하고 있으며, 주관적인 해석 역시 가능해 이들에 대한 자의적인 강제 수용에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정부는 공무원과 경찰에게는 실적점수를, 이후 민간단체에는 보조금을 지급하며 대대적인 단속을 벌였는데요. 사실상 도시 하층민을 향한 마구잡이 통제가 ‘구걸행위자보호대책’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에서 추진되었던 것이죠. 그중에서도 국내 최대 민간 부랑인 시설이 우리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형제복지원’입니다. 추정 전체수용인원은 4만여 명, 확인된 사망자만 550여 명에 이릅니다. 그러나 원장 박인근 씨는 1987년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고, 작년 이 무죄 판단이 잘못됐다고 제기한 비상 상고 역시 기각되었습니다. 부랑자 수용이 당시 정부 훈령에 따른 것이기에 불법이 아니라는 것이 당시 대법원의 설명입니다.

🎬 현대판 노예 12년

1986년 형제복지원의 심각성을 처음 인지하고 수사한 김용원 검사는 집단수용시설의 실태가 수백 년 전 미국 노예 임대와 비슷하다고 한 바 있는데요. 1808년 미국에서 ‘노예 수입’은 금지되었지만, 57년이 지난 1865년에야 노예 매매를 포함한 ‘노예제’가 폐지되었습니다. 이 사이 대규모 농업이 주를 이루던 남부지역에서는 여러 법적인 제재들로 노예의 수가 줄자 자유인 신분의 흑인까지 납치하는 일이 만연했다고 하죠. 영화 <노예 12년>의 주인공 솔로몬 노섭 역시 당시 피해자 중 하나이자 실존 인물로, 어느 날 갑자기 납치되어 12년간 노예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이후 인신매매범들과 노예상을 재판에 회부했지만 이 역시 모두 패소했다고 하죠. (박 모 원장이 떠오르는 대목…😠)

집단수용시설에서 살아남은 피해자들은 자유를 되찾은 몇 사람 중 일부지만 여전히 정신적·신체적 장애를 안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번 조사를 진행한 전문가들 역시 수용시설에서의 경험이 이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추가 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데요. 그 외에도 책임자 처벌과 피해자 보상 등 해당 사건에 대해 우리들의 관심이 필요해 보입니다. 🙏

by. 😕줄리

⭐ 정인이가 남기고 간 변화 | 즉각분리제도

2020년 6월 천안·창녕 아동학대 사건에 이은 ‘정인이 사건’을 계기로 2021년 3월 30일부터 ‘즉각분리제도’가 실시되었습니다. 즉각분리제도란 지방자치단체가 아동학대 피해 아동에 대한 보호 조치를 할 때까지 보호시설, 위탁가정‧개인 등에게 일시 위탁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위탁을 하는 7일 동안 추가조사, 건강검진, 심리검사 등을 실시하여 피해 아동 보호 계획이 설립되는데요. 즉각분리는 1년 이내에 2회 이상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된 경우 혹은 재학대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에 해당할 때 이루어지게 됩니다.

👮 ‍즉각 분리된 아동의 94.2%가 아동학대로 판단

기존의 아동학대 처벌법에 근거한 응급조치 제도는 보호 기간이 72시간으로 짧고, 학대 피해가 확인되지 않으면 분리 보호가 어려운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즉각분리제도인데요. 이 제도를 통해 학대 피해가 확인되지 않더라도 재학대가 우려되고 면밀한 조사 등이 필요한 경우엔 아동을 분리해 보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작년 3월~12월까지 집계된 즉각분리는 1,043건이었는데요. 보통 조사를 거쳐 아동학대로 판단되는 경우가 7~80% 수준인데 반해, 즉각 분리된 사례의 경우는 94.2%가 아동학대로 판단되며 그 실효성을 입증했습니다.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보다 신속하게 보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즉각분리 vs 응급조치, 구분 어려워...

하지만 즉각분리제도를 담당하는 실무진들의 반응은 회의적입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담당 직군 모두 기존 응급조치와 즉각분리제도의 구분이 어려워, 즉각 분리 조치를 취하기 보다는 익숙한 기존 제도를 훨씬 더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 지배적 반응이었습니다. 또 현장에서 즉각분리와 응급조치를 신속하게 구분하고 판단하는 게 쉽지 않고, 대부분의 상황이 응급조치로 해결 가능하기 때문에 즉각분리제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죠. 전문가들은 즉각분리제 안착을 위해 현장 판단 기준부터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제시돼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 분리된 아동을 담기엔 적은 보호 시설

현장 판단 기준의 모호성 외에도 아동을 보호할 시설이 부족하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분리 조치는 학대 사건에 있어 적극 권장되어 실제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전국 학대 피해 아동 쉼터는 105개소, 일시보호 시설은 13개로 한참 부족한 실정입니다(2025년까지 240개로 확대할 계획). 양육시설과 인적 인프라 부족으로 인해 비교적 보호 기간이 짧은 응급조치(72시간)로 선회되기도 하고, 쉼터 정원 초과로 아이들이 거실에서 자야 하는 등의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 아동 피해자 법정 출석은 이제 그만